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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차이는 넘을 수 없는 것인가

18살연하의 남성과 막 결혼한 40대의 여성이 있다. 남편의 해외전근이 정해져 진행한 결혼으로, 적어도 내년까지는 별거생활이다. 대체 어떠한 여성일까. 어떠한 흐름으로 결혼에 다다르게 되었는가. 나이의 차에서 오는 불안은 없는가. 인터뷰를 진행한 장소는 시부야의 포르트칼음식점. 바다옆에 사는 남편을 생각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진출처 : 유튜브


-독친에 의한 기나긴 괴로움
 요가교실을 끝내고 와준 회사원 미야자키 아야노씨(가명, 42세)는 긴 머리에 안경을 쓴 모습. 첫눈에는 조용할것 같은 이미지지만, 이야기를 시작하자 활발한 성격임을 알 수 있었다. 중학교시절의 미술선생님을 떠오르게 한다.
 "고등학생때부터 끊임없이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저희엄마는 이른바 '독친(자녀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가두는 부모)'이어서 마음을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친구들에게 털어놓기엔 한계가 있으니까요"갑자기 고백을 하는 아야노씨. 어머니의 어머니, 즉 할머니도 꽉 막힌 사람이어서 어머니도 할머니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화풀이가 필요했고 장녀인 아야노씨는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제가 얌전히 있을때는 상냥하지만, 내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용서하지 않았어요. 사회인이 되서는 몇백만엔이나 어머니에게 빼았겼습니다. 하지만 결국 제가 불효녀라고 이야기하고 다니더라구요.."아버지도 나쁜사람은 아니지만 완전히 어머니의 말만 따른다. 의지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아야노씨는 결혼욕구가  커지면서"아이는 필요없어. 나한테 육아는 무리야"라는 생각을 했다고한다. "부모도 나를 구해줄 수 없는데 주변사람들이 구해줄거라고 생각은 안합니다. 아이가 있으면 제 발목이 잡히는것 밖엔 상상할 수가 없어요"
-'회사에서 이어준'인연
 결혼의 계기가 된 결혼파티에 출석한 것이 2015년의 일이다. 그룹각사의 노동조합이 공동으로 주최한 대규모파티로 참가자가 300명이상. 아야노씨는 40살이 되던 해로 만남의 장소에 참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남성들은 20~30대뿐, 관리직이 되면 노동조합에서 제외되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의 연령은 다양해서 저같은 40대도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은 동료의식이 있어서인가 보통의 결혼파티에서는 없는'놀이'의 개념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아야노씨가 참가한 이 대규모의 결혼파티에서는 남성참가자가 열쇠를 들고 있고, 취향인 여성이 들고있는 자물쇠를 열고 기뻐한다 라는 유니크한 놀이였다.
  "저한테 온 사람이 지금의 남편입니다. 얼굴도 작으면서 키도 크고 왕자님같은 외모였습니다. 제 자물쇠가 열쇠와 맞지 않았는데 남편이 다른 친구에게 열쇠를 10개나 빌려와 어떻게 해서든 제 자물쇠를 열려고 해서.." 남편은 귀여운면이 있는 남성이었다. 확연한 연상인 아야노씨에게 빠져 떨어지질 않았다.
  "파티가 끝날때까지 계속 설교했습니다. '나는 40살이야. 중년이야'라고 5번은 이야기했는데 그는 관계없는것 처럼 보였습니다. 매칭표의 제일위에 제번호를 써달라고 부탁받았습니다. 커플이 되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발표되면서 기념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념품을 노리고 잠깐 커플인척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제손을 잡고'첫눈에 반했습니다!'라고 공개하였습니다"아야노씨는 당황했지만 그를 받아들였다.
-둘중 누구도 부모에게 기댈 수 없다.
   '이 사람이 떨어질때까지만 사귀자. 그래도 2년은 넘기지 말고 놓아주자'라고 생각했다고 아야노씨가 밝혔다. 하지만 남편은 진심이었다. 2번째만남에 프로포즈. 아야노씨는 일단 받아들였지만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진심일지도 모르지만 부모나 형제가 반대를 할터였다. 자신이 부모라도 반대했을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여기서 둘은 기묘한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두 사람다 부모에게 기댈 수 없었다는것. 남편의 어머니는 2년전, 50대초반의 나이로 돌아가셨고,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와도 사이는 좋지 않았다. 형제도 없어 천애고아에 가까운 몸이었다.
 그래도 두 사람에게 문제는 남아있었다. 어디에 살지, 돈은 어떻할지 였다. 혼자서 긴 시간을 살아온 아야노씨는 수도권에 혼자살기 위한 맨션을 구입한 참이었다. 매우 맘에 들지만 옷이 많아 두명이서 살기에는 부족했다. 회사에서 기숙사생활을 하던 남편은 학생때의 장학금(일본은 장학금을 받으면 다시 돌려줘야 한다. 학자금대출의 개념)과 자동차대출이 남아있었다. 빚을 더 지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두명이서 살기 위해서는 아야노씨가 맨션을 팔고 저금을 깨야했다. "적어도 자동차대출만이라도 해결이 가능한가, 아니면 해외전근이라도 가지 않으면 결혼은 안해"라고 말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결혼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미 멀어졌던 아야노씨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남편이 정말로 해외전근을 가게 되었다. 또한 전근수당도 나오기 때문에 귀국할때쯤에는 장학금과 자동차대출이 끝나고 아야노씨와 둘이 시작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모을 수 있다.
 결혼이 정해지고 북해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둘만의 결혼식을치르고 나서야 결혼에 대한 실감이 났다. 바로 별거생활에 들어갔지만 인터넷으로 하루네번 연락을 하고 있다. "결혼하고 나서 매우 좋아요. 지금까지와의 안정감과는 다릅니다. 어제는 울면서 그에게 전화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가 이야기를 들어주자 개운하게 잘 수 있었습니다"

사진출처 : 유튜브


-10년, 20년뒤의 불안은?
 나이차에 대해서는 지금은 걱정없다고 아야노씨는 이야기한다. 결혼당시의 남편은 '아이가 갖고싶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아야노씨가 '나는 무리야'라고 이야기하고, 수면시간이 너무 긴 남편에게도 육아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하자 남편은 납득하고 자신들만의 생활과 취미에 시간을 쓰는것이 좋겠다고 아이갸힌다.
 사회인이 되면 상대와의 나이차를 잊어버리는 일이 많다. 특히 길게 사귀어온 사람은 선배, 후배가 아닌 인간끼리의 대등한 관계가 되는 경우가 많다. 부부의 연을 맺는것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아야노씨와 남편은 지금 연령의 차와 물리적인 거리에도 관계없이 서로를 아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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