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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들어 유럽의 설탕 소비량은 급증했다. 신대륙에서 설탕을 재배하면서 생산량이 늘어 예전만큼 비싼 가격에 거래되진 않았지만 부유층이 아니더라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호품이 되어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났다. 서인도 제도에서 시작된 설탕 전쟁에서 저렴한 노동력이 대량 필요했다. 서인도 제도에서 설탕이 활발하게 생산될 무렵 미국 동부해안의 뉴잉글랜드 식민지는 버블 경기로 들끓고 있었다. 뉴잉들랜드 앞바다에는 대구가 가득 잡혔기에 대량의 대구를 서인도 제도로 팔아치울 수 있었다. 저렴한 대구는 노예들의 식량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대구를 팔고 돌아가는 배에는 설탕과 당밀이 가득 실려있었는데 설탕은 유럽으로 수출하고 당밀은 뉴잉글랜드로 가져왔다. 당밀이란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를 말한다. 찌꺼기라 행도 불순물과 함께 당분이 60% 전후로 남아 있어 미국 내에서는 저렴한 감미료로 설탕보다 더 잘 팔렸다. 원재료가 저렴해서 수입도 짭짤했다. 워낙 대량으로 당밀이 들어와 전량 처분이 어려워지가 럼주공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싼 원료로 만들 수 있는 럼주는 뉴잉글랜드 경제에 더 큰 이익을 가져왔다. 서인도 제도와 유럽을 왕복하는 배가 늘면서 선박의 수요가 증가했고 뉴잉글랜드 조선업은 호황을 누렸다. 배는 넉넉한 개발 자금 덕에 점점 성능이 좋아져 아프리카 서부 해안까지 항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미국에서 아프리카까지 말린 대구와 럼주를 싣고 왔다가 돌아갈 때는 노예를 사들여 서인도 제도에 팔거나 미국 본토로 데려가는 새로운 삼각무역이 성립됐다. 서인도 제도의 설탕 경기로 인해 노예의 오두막이나 제당공장을 짓기 위한 목재, 사탕수수를 짜는 동력이 되는 말, 농장에 모여드는 이들을 위한 식량 등 온갖 재료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미국 경기는 황홀한 호황에 도취되었다. 



18세기 들어 뉴잉글랜드 식민지가 시작한 삼각무역이 확고해지자 영국 본국과의 이해관계로 인한 대립이 대두되었다.결국 이것이 미합중국 독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미국은 설탕무역의 이익을 빼돌림으로써 독립을 노리는 데 충분한 부를 쌓고 있었다. 1861년 남북전행 무렵 설탕은 아직 고가였고 미국 가정은 주로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당밀을 많이 사용했다. 19세기 사탕무의 등장으로 사탕수수의 설탕 가격이 내려갔다. 1880년 무렵부터 미국 가정에서 병에다 잼을 만드는 붐이 일었다. 주부들은 온갖 과일로 잼이나 설탕절임을 만들었고 이 덕에 1880년부터 1915년까지 35년 동안 미국 백설탕 소비량이 두배로 증가했다. 백설탕이 저렴해지면서 미국을 지탱하는 가난한 노동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잼을 듬뿍 바른 빵과 영양은 없어도 칼로리가 높은 백설탕을 잔뜩 넣은 음료는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에너지원이 되었다. 오늘날까지 문제가 되는 미국인의 비만이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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